과학

과학고 졸업생이 전하는 서울과학고 의대지원 시 1,500만원 환수 건.

 

 

 

(필자는 19XX 년대에 과학고를 졸업하였고, 현재도 이공계에 종사하고 있음을 우선 밝힙니다.) 필자의 재학 당시에도 수료생 및 졸업생의 의대 지원율이 20%에 육박하였습니다. 심지어 비교내신제도들의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입학생의 30%는 자퇴라는 강수를 두기도 하였습니다. 과연 이 시절의 과학고등학교 입학생들 중 몇 프로가 설립 취지대로 이공계로 진학을 하였을까요?

 

나라면 갈 것 같은데? ㅋ

 

 

서울과학고등학교가 2020년부터 의학계열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그간 제공하던 교육비 총 1,500만 원 내외를 환수하겠다고 합니다. 서울시 교육청은 이러한 내용을 담아 '2021학년도 서울과학고 신입생 선발제도 개선 및 이공계 진학지도 강화"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내년 신입생부터는 학교에서 받은 그 어떠한 수상 실적도 의대 진학을 위해 사용할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서울과학고등학교는 과학분야에서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설립된 영재학교입니다. (영재학교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다음 기회에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상당수 졸업생이 이공계열이 아닌 의학계열 대학에 진학하고 있었습니다. 과학고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과학영재 육성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해서 국가 차원에서 설립되었기 때문에, 학생 1인당 연간 500만 원, 고교 3년 동안 총 1,500만 원 내외의 교육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특수 목적 고등학교를 의대 진학의 발판으로 이용하는 건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사실 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이 의대에 진학하는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경제적 안정이 보장되는 전문직인 의사에 비해서 이공계 전문 인력에 대한 처우가 상대적으로 낮아서 의대행을 선호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있습니다. 과학 영재 양성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만큼 입시 정책을 개편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공계열 전문가들의 처우개선과 인식이 함께 나아져야겠지요.

 

필자는 왜 이런 환수 정책이 이제야 발표되는지가 의문입니다. 아래 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필자의 졸업 이후 20여 년이 넘게 지난 지금, 서울과학고 학생들의 의학계 진학률은 더욱 높아졌네요. 정말 충격적인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과학고등학교 연도별 졸업생 진학 현황 (자료: 서울시 교육청)

 

사실 서울과학고는 그동안 이미 의대에 합격 및 등록을 마친 학생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돌려받았습니다. 상기 계획은 장학금을 돌려받는 시기를 등록이 아닌 원서를 쓰는 시점으로 변경하는 안에 불가합니다. 또,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에 대해서는 일반고로의 전학을 권고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하네요. 정말 보여주기 식 탁상행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산 영재학교는 2012년부터 교육비 환수 등을 시행하고 있습니다만, 이 것도 많이 부족한 룰입니다. 그냥 과고생들의 의학계열 진학을 애초에 차단하는 것이 왜 어려운 일일까요? 이러한 강력한 법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의학계열로 진행하는 과학고 학생들을 절대 나무랄 수 없을 것입니다. 1,500만 원 환수한다고 그들이 앞으로 의대를 안 갈까요?

 

서울소재 과학고등학교 의대 진학 현황 (출처 : 서울시 교육청)

본 글의 주제에서 벗어난 내용입니다만, 올해 서울과학고 신입생의 48.4%가 강남 대치동에 있는 특정 학원을 다녔다고 합니다. 필자의 재학 시절에도 30% 정도가 하나의 특정 학원 출신이었는데, 그 비율이 큰 폭으로 증가하였네요.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특목고를 폐지한다는 발상도 참 씁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